변화 품어낸 '섬'...관찰로 일군 윤종신의 음악 영토

변화 품어낸 '섬'...관찰로 일군 윤종신의 음악 영토

2026.10.04. 오전 04:3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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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앵커]
올해로 데뷔 36년을 맞은 윤종신은 스스로를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'섬'이라 불렀습니다.

늘 가장 기민하게 시대와 호흡해 온, 윤종신의 음악 세계를 찾아갔습니다.

이준엽 기자입니다.

[기자]
[윤종신 / 유튜브 '월간 윤종신' : 나 가까이 떠 있는 섬이 될게. 날 궂으면 다음 배를 타고 내게 와줘.]

650곡이 넘는 노래를 써 내려온 윤종신은, 이제 자신은 배를 타고 찾아와야 하는 섬이 됐다며 자세를 한껏 낮춥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(제가) 어떤 육지의 한 부분이었다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섬처럼 떨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. 그래서 저를 보러 오기 위해서는 집 가까이 있다기보다는 조금 배 타고 좀 나와야지 볼 수 있는?]

■ 대륙보다 먼저 파도 맞는 '섬'

인기 중심에서 물러섰다는 고백과 달리, 섬을 둘러싼 변화의 파도를 받아들이는 데 그 누구보다 민감합니다.

SNS를 발 빠르게 활용했듯, 이번엔 인공지능을 창작의 파트너로 선뜻 맞아들였습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수억 개의 뇌를 저를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거니까. 최고의 뇌를 가진 조수 한 명을 옆에 두고 있는 느낌.]

특유의 유연함은 17년을 매달 이어온 자신만의 브랜드, '월간 윤종신'에서도 발휘됩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숏폼이라든가 어쨌든 호흡들이 굉장히 빨라져서 '월간 윤종신'도 좀 가지고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. '뉴 페이스'들, 제가 '월간 윤종신 등용문'도 함께 하고 있거든요? '등용문'을 조금 더 키워볼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.]

윤종신의 섬에는 동료 창작자들의 배가 끊임없이 닻을 내립니다.

매달 노래 한 곡, 뮤직비디오 한 편, 스스로 정한 마감을 지켜온 비결은 '집단지성'입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(동료를) 자주 만나고 술자리도 자주 하고 괜찮은 음악가들이 있으면 제 곡을 받기도 하고, 그다음에 괜찮은 가수가 있으면 협업 제안도 하고. 월간 윤종신은 저만의 프로젝트는 아닌 것 같아요.]

■ '좋니' 대박도 '일상의 해프닝'

학창 시절부터 안고 살아온 크론병 투병, 그리고 50대에 찾아온 '번 아웃'.

고비마다 일으켜 세운 건 첫째가 가족, 둘째는 창작이었습니다.

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해외로 떠났을 때조차 음악적 본능만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"창작을 안 하면 내가 지금 삶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가장 저한테는 버팀목이었던 것 같아요.]

10년 통산 노래방 애창곡 1위!

마흔아홉에 부른 '좋니'의 벼락같은 열풍도, 매달 곡을 내어온 일상에 스며든 행운으로 덤덤히 받아들입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'좋니'는 사실은 저는 제 창작사에 있어서 이렇게 막 너무 의미를 두진 않거든요? 여러 가지 탁탁 맞아떨어졌을 때 생기는? 저는 해프닝에 가깝다고 보죠.]

■ 관찰로 빚어낸 이별의 미학

'테이프' 세대부터, 'AI' 시대까지, 쉬지 않고 쏟아낸 명곡의 뼈대는 일상을 집요하게 살펴 건진 노랫말입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주위 사람들의 얘기 경험들 좀 귀담아듣는 거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거기서 힌트 얻거든요. (그러다 보니까) 지금 살아가는 여러분들 모습, 얘기를 좀 대입시키기가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.]

음악을 너무 엄숙하게 생각하지 않으니, 세상 모든 게 노래의 재료가 됩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자기가 하는 일을 너무 거창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작품이 별로 재미없어진다고 생각을 하는 쪽이라. 팥빙수 레시피로 그냥 멜로 가사를 써볼까, 뭐 이런 생각을 해버리는 거죠.]

특히 '찌질'로 대표되는 솔직한 이별 묘사는 스스로가 꼽는 '윤종신표' 가사의 정수입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보고 싶고, 그립고, 만나고 싶은데 못 만나고 하는 감정은 그 사람의 모습이 멋있을 순 없죠. (근데) 조금 더 떨어져서 보면 그 찌질한 게 조금 더 아름다움에 가깝지 않나? 초연한 것보다는.]

[윤 종 신 / 음악가 : 그래 바로 거기였어 잠시 머물던 거기가 제일 높은 곳이었어]

■ 36년 끓여낸 '진한 국물'

가장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, 나이 들어가는 스스로의 모습도 작품으로 만들어 냈습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(그동안) 봤던 사람들한테는 이제는 사실 윤종신은 가끔 보는 존재이길 바라고, 콘서트 규모도 예전보다는 확실히 줄었고.]

오랜 세월 구축해 온 독보적인 음악으로, 세상 사람들의 발길을 자신의 섬으로 끌어당기겠다는 다짐입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삼십몇 년을 끓인 그 우러난 국물로 막 대중적이진 않아도 '아 저건 한 36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.']

그렇게 자신을 찾은 팬들에게서 세대 불문, 높은 밀도를 느낍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(학생 때 제 노래를 듣다가) 지금은 자녀와 함께 오는 분들도 많고. 근데 그 자녀분이 제 노래 이별이라든가 그리움의 정서를 이해하고 지금도 그런 일을 겪고 있다는 게 신기한 거죠.]

후대에 어떤 가수로 기억될지는 온전히 대중의 몫으로 남겨둡니다.

[윤 종 신 / 음악가 : "아무런 바람이 없고, 제가 산 대로 기억되겠죠, 뭐. 대중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 자체가 별로인 것 같아요.]

그저, 또 한 번 찾아온 계절을 노래하며, 사랑하는 관객들과 무대에서 만날 채비를 마쳤습니다.

[[가을옷] - 윤종신 : 내 가을옷, 하나씩 꺼내∼ 좀만 지나면, 못 입을 옷∼]

36년을 차곡차곡, 자유로이 쌓아 올린 '섬'은 어느덧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윤종신만의 단단한 영토가 되었습니다.

YTN 이준엽입니다.

영상기자;이수연 왕시온

영상편집;이수연

YTN 이준엽 (leejy@ytn.co.kr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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